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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로파(格魯派,꺼루파,겔룩파, 황교黃敎)는 1409년에 창건되었으며, 15세기 서장불교사상 저명한 종교개혁가인 쫑카파가 종교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으로, 서장불교 가운데 가장 늦게 형성된 교파의 하나이다. 라마교의 한 파, 15세기 초기에 총카파가 홍교 혁신을 위하여 세웠으며, 계율이 엄격하고 도덕적 교의를 중요시하였다.

티벳 불교는 본교라는 그들의 독자 종교에 당나라 이래로 전래된 중국불교, 원나라 때 이뤄진 몽고식 불교를 통합해 발전하였다. 이때부터 정교일치의 흐름이 강화되어 17세기부터는 법왕이 포달랍궁의 주인이 되어 정치도 함께 담당하게 되었다.

인도 아티샤의 법을 받은 제자에 의해 카담파가 세워졌는데 이를 토대로 종카파가 기존 종파들의 폐단을 개혁하고자 세운 종파로서 신카담파 라고도 불립니다. 밀교가 아닌 대승불교적인 현교(顯敎)에 속합니다. 청해성 시닝의 타르사 근처에서 태어난 이 종카파는 현재 이종파의 교조로 추앙되어 법당에 석가상과 나란히 앉아 있을 정도의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황색 옷과 모자를 쓰기에 황교 또는 황모파(黃帽派)라고 부릅니다. 이 게룩파는 후에 칼마파를 모방하여 달라이 라마 제도를 확립하여 토번제국 멸망후 오랫동안 분열되었던 국토를 통일하여 라싸 포탈라궁을 중심으로 5백여년간 설력고원을 다스렸으며 밀교 일변도의 티벳불교를 현.밀 양교(顯密兩敎)의 형태로 형평성을 유지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예전에는 중의 결혼을 허용하였지만(홍교, 홍모교 : 붉은 모자를 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이것이 타락과 세속화를 부채질하자, 손 카파(1357 ~ 1419)가 기존 교단의 타락을 비판하고 개혁을 일으켜 결혼을 불허하는 황교(간덴파, 황모교 : 노란 모자를 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를 창시했다. 그후 황교는 세인들의 환영을 얻어 급속도로 확산, 후에 달뢰대라마의 원류가 된다. 지금도 티벳의 국가적 종교를 이루고 있다.

게룩파는 14세기에 마지막으로 부상합니다. 14세기에 티베트의 총카파(Tsong khapa)가 일으킨 티베트불교의 중심 종파로, 당시 불교도들의 풍습이 어지러워 부처의 가르침을 어기는 일이 많은 것을 보고 일으켰다. 엄격한 계율을 강조하였으며, 좌구(座具)와 바리때로 소박한 생활을 하던 옛 인도승려들의 습관을 따랐다. 서역에서는 게룩파라고도 하고, 도덕파(道德派)라고도 부른다.

쫑카파는 서장의 말죽정권(말竹政權)이 살가정권을 대체한 시기에 탄생하였으며, 이 시기는 상층의 승려들이 직접 정치권력의 투쟁에 참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생활이 날로 부패하여 사회적으로 민심을 점차로 잃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 정면으로 대응하여, 쫑카파는 계율을 중시하자는 구호를 외치면서 도처에서 불경을 설명하고 설법하며, 저서를 통해 학설을 세워서 승려가 계율을 지키지 않는 것을 비판하면서, 적극적으로 서장불교의 개혁을 추진하였다.

15세기 이후 티베트 불교의 중심 세력을 이루었으며 다른 파와 구별하기 위하여 노란색 옷과 모자를 착용하여 황교(黃敎)라 한다. 티베트가 1959년 중국에 예속되기 전까지는 티베트의 종교는 물론 정치도 지배하였다. 1409년 장력(藏曆) 정월(正月)에 그는 라싸의 대소사(大昭寺)에서 기원대법회를 발기하였으며, 이것이 바로 현재까지 지속되는 전소대법회(傳昭大法會)이다. 법회 후에 쫑카파는 저명한 감단사甘丹寺를 건립하고 엄격하게 계율을 지키는 격로파(格魯派, 격로格魯는 서장어로 계율에 뛰어나다는 의미)를 창립하였다. 쫑카파 및 그 추종자들이 황색(黃色)의 승모를 사용하였으므로,'황교(黃敎)'라고도 한다.

황교가 창립된 뒤에 계속하여 철방사(哲蚌寺), 색랍사(色拉寺), 찰습륜포사(紮什倫布寺), 탑이사(塔爾寺), 랍복능사(拉卜楞寺)를 건립하였으며, 이 사원들은 감단사와 함께 격로파의 육대사원(六大寺院)이라 불리워진다. 이 밖에 황교는 또한 달라이와 판첸이라는 양대 활불의 전세계통을 창립하였다.

최고 지도자는 다라이라마로, 17세기 청(淸) 태조 누르하치가 황교 지도자에게 부여한 호칭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주요사원으로 드레풍(Dreprung)사원, 간덴(Ganden)사원 등의 6대사원이 있다. 드레풍사원은 라싸[拉薩] 시내에서 서북쪽으로 41km 떨어진 바위산에 있는 티베트 최대의 사원이다.

그러다가 1950년 중국에의해 점령당하게 되며 게룩파는 강력했던 통치권을 잃어버리고 법왕인 14대 달라이라마가 1959년 무력항쟁의 실패후 인도로 망명하게 됩니다. 그후 1966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문화혁명으로 게룩파의 거의 모든사원이 파괴되고 승려들은 환속당하였으나 1984년의 햇빛정책으로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고 사원들도 복구되기 시작하여 게룩파는 다시 소생합니다.

현재 티벳트 제2의도시인 타시룬포 사원의 법주인 제11대 판첸라마(현재21살인가?)를 중심으로 게룩파는 티벳불교의 최대종파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칼마파의 망명으로 동요된 티벳사회에 새바람을 넣고자 제7대 레팅 린포체로 옹립된분도 이파에 속합니다.

황교의 법왕 다라이라마가 거주하면서 집무하던 궁전은 포탈라궁[包達拉宮]이다. 티베트 납살 서북부 마부르산 위에 있는 이 궁전은 본래 7세기경에 토번왕 손챈감포가 당나라 문성공주에게 지어준 건물이라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다라이라마 5세가 17세기경에 지은 것으로 방이 999칸인데, 원래의 홍루까지 합하면 1천칸이다. 궁의 부지는 41헥타르에 이르며, 주건물은 13층으로 높이가 110m이다. 궁전 건물 중 5개의 지붕은 금을 도금한 구리기와로 덮여 있어 금빛 찬란하고 웅장하다. 포탈라궁은 홍궁과 백궁으로 나뉘는데, 홍궁은 주로 종교 사무에 사용하고 백궁은 정치와 생활에 사용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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