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팔사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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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슬갑사(嘉瑟岬寺) 또는 가실사(加悉寺), 가서사(加西寺, 嘉栖寺), 고시사(古尸 寺), 갑사(岬寺), 작갑사(鵲岬寺) 등으로도 불렀다.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운문산(雲門山) 운문사 (雲門寺)에서 동쪽으로 9천보쯤 떨어진 가서현(加西峴) 북쪽 골짜기에 있었다.

원광 법사는 수나라에 조빙사로갔던 내마 제문과 대사 횡천을 따라 귀국하여 운문산(雲門山:청도)가실사(加悉寺:가슬갑사)를 중창하고 그곳에 머문다. 원광(圖料이 중국의 수(隋)나라에서 유학하고 66o년에 귀국하여 청도(淸道)에있는 가실사(加悉寺)에 있을 때에 사량부에 있는 귀산과 추항이 찾아가서 펑생을 두고 계명(戒命)으로 세속오계를 받았다.

후삼국의 싸움으로 이 절을 비롯한 일대의 절들이 모두 파괴되었고, 그 기둥만이 남아 이를 대작갑사에 모아 두게 되었다. 고려 초 보양(寶壤)이 허물어진 이 절을크게 중창하여 작갑사라고 했다. 그 뒤 고려 태조가 후삼국을 통일하고 밭 5백결을 이 절에 바쳤고, 937년(태조 20) 운문선사(雲門禪寺)라는 사액을 내렸다. 그 뒤의 역사는 전래되지 않고 있으며, 언제 폐사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현재 절터만 남아 있다.

가토사(駕土寺)는 황해도 수안군 수구면 덕암리에 있다. 누가 창건했는지는 알 수없으나, 고려시대에 창건했다. 그 뒤 조선시대에 폐사되었다가, 1931년 수구면 내 유지들의 지원으로 중수되었다.

이 절의 관음당은 자연의 바위굴을 이용한 법당으로서 내부에는 관음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절의 아래 절벽석혈(石穴)에서는 약수가 흘러내리는데, 절 이름과 관련된 설화가 전한다. 옛날에는 이 석혈에서 샘물이 아닌 쌀이 매일 흘러 나와 이 절에 머무르는 스님들이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양이 되었다. 그러나 어느 때 욕심 많은 주지가 쌀이 나오는 구멍에 손을 넣었는데, 그 속에서 까투리 한 마리가 나와서 날아갔다. 그러자 그 뒤부터 쌀 대신 샘물이 흘러 나왔으며, 또한 까투리(가토)가 날라갔다 하여 절 이름도 가토사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